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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할아버지는 김구 선생 옆에서 독립운동을 도우셨다고 한다. 또한 선한 성품에 뛰어난 운동신경,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옅은 황갈색 눈을 가진 분이셨다고 한다. 그러한 특징이 내 무의식에 자리 잡아 사냥꾼과 호랑이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가족 내력이 있기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는 고리타분한 역사가 아니라 내 현실의 한 부분이 되었다. 조부 시절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반도는 왜적을 피로 물리쳤으며, 야수들은 아직 분단되지 않은 남과 북의 영토를 넘나들었다. 이렇게 가까운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아가 시대와 지리를 초월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인류는 지금 자연 파괴, 전쟁, 기아 등을 맞이해 과거보다 더 큰 물리적, 윤리적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환멸의 세상에서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바람과 목적이 이 책이 문화적 국경을 뛰어넘고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는 요건이 되었다고 본다. 힘든 시대를 극복한 우리 조상이 가졌던 우정, 사랑, 이타심, 정의로움, 용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은 일본인 장교가 한국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나왔는데, 작은 땅에서 거침없이 번성하던 용맹스러운 야수들은 한국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때 호랑이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사람들을 북돋아 줬다. 월간지 《개벽》의 1920년 6월 창간호 표지에는 용강하게 포효하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민족사상 양성에 주목적을 둔 잡지에서 우리나라의 첫 상징으로 호랑이를 뽑은 것이다. 당시 지도자들은 일제의 호랑이 사냥을 민족 탄압으로 여겨 비난했다. 호랑이가 국민에게 연민의 대상이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한반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수천 가지 설화, 옛날이야기, 민화 등 예술 작품에서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전통예술 속의 호랑이는 익살스럽고, 사납고, 똑똑하고, 용맹하고, 게으르고, 착하고, 멍청하고, 복수를 하며, 은혜를 갚는다. 호랑이는 그저 사람을 해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사촌이었다. 너무나도 작은 땅덩이에서 오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런 어마어마한 맹수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한민족의 자연에 대한 경의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자연을 존중하여 함께하는 것이 한국 문화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신이 많이 피폐해진 지금, 우리의 본질을 일깨우고 싶었다.   

 

한반도가 작은 땅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어렸을 때 지구본으로 본 한국은 너무나도 작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인은 작은 영토에 걸맞게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에 족하지 않고,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독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지금도 적은 인구와 작은 영토 이상으로 세계에 기여하고 있다.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맞는 말이다. 내가 책을 쓸 때 가장 나다운 글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로 책이 나오는 것은 특히나 큰 의미이고 영광이다. 이 야수들이 모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고대해 주고 응원해 준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판 서문에서

Beasts of a Littl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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